이번주는 내내 흐리네요.
이렇게 흐리고 추운 날씨 하면 딱 생각나는 작품이 있습니다. 영화 <파고>입니다.
흐린 하늘에 서걱서걱한 눈과 얼음, 흰 눈밭에 뿌려지는 붉은 피.
차갑고 무미건조하며, 아무렇지 않아서 더 무서운 영화였는데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 코엔 형제가 이 작품을 드라마로 리메이크했다고 합니다.
어느새 시즌 3까지 제작되었고, 웨이브에서 시즌 3을 국내에 최초로 오픈했습니다.
영화 <파고>와 미드 <파고>, 맛보기 한번 해 보실까요?
천재 감독 코엔 형제의 영화, <파고>
"a homespun murder story(소박한 살인 이야기)"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문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소박함과 살인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연속인데도 그렇습니다. <파고>는 일반적인 범죄 영화, 스릴러 영화와는 궤를 달리합니다. "이것은 실화다."라는 자막과 함께 조용히 시작하며, 정적인 연출로 이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극을 평범하게 담아내죠. 그래서 더 긴장이 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가 어렵거든요.
<파고>는 영화계의 세계적인 거장 코엔 형제(조엘, 에단)가 제작한 작품입니다. 코엔 형제는 <파고>외에도 <바톤 핑크>,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인사이드 르윈> 등으로 칸 영화제 대상,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등 수많은 상을 받으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죠.
<파고> 역시 1997년 칸 영화제 감독상, 오스카 각본상 등 총 83개의 상을 수상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10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매력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주목을 받았을까요?
스노우볼 효과: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눈덩이
자동차 영업사원 제리 런더가드는 돈이 필요합니다. 아내와 장인이 부자지만, 자신에게 투자해주지 않자 아내의 납치를 사주해 돈을 빼돌릴 생각을 하는데요. 이 작당모의가 예기치 못한 살인을 부르면서 스노우볼처럼 점점 커져 그들을 덮쳐옵니다.
이 영화의 특징은, 범죄영화에서 흔히 기대하는 것들을 전혀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참혹한 연쇄살인을 불러온 주인공, 제리와 두 악당들은 모두 어딘가 얼치기같은 면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특별한 악의를 품고 있다거나, 신념을 가지고 있다거나, 살인을 즐긴다거나 하지 않죠. 제리는 어딘가 어리숙하고 미덥지 못한 소시민입니다. 아내를 납치한 칼과 게어 역시 철두철미한 킬러가 아니죠. 칼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웃기게 생겼다"고 표현하고, 게어는 늘 멍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들은 뚜렷한 영웅도, 악당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 같아 보이고, 카메라는 이들의 범죄 행위를 '평범'한 행위처럼 담백하게 담아냅니다. 이런 면모가 이 영화에 블랙 코미디를 더하는 한편, 오히려 범죄를 범죄로 부각시킵니다. 범죄는 액션이나 스릴러 영화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사람의 시체를 목재용 분쇄기에 넣어버리는.. 충격적인 모습으로도 유명한 이 영화.
흰 눈은 미디어에서 깨끗하거나 포근한 이미지로 많이 표현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붉은 피 위를 덮으며 비명조차 삼켜버리는 듯합니다.
또 명작인 만큼 보는 사람마다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는데요, 한 번 <파고>의 물결에 탑승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드라마로 더 치밀해진 <파고> (시즌 1~3)
영화 <파고>는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2014년에 미드로 리메이크되었습니다. 특기할 만한 건 영화를 제작했던 코엔 형제가 드라마의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는 점이죠. 다른 프로듀서, 감독이 리메이크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파고>의 경우엔 원작을 따라가지 못할까 하는 우려가 낄 틈이 없습니다. 실제로 드라마가 영화의 내용과 톤을 꽤 많이 반영하고 있는데요. 그 자체로도 작품성을 인정받아 에미상,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하고 여러 매거진에서 TV쇼 TOP100 안에 들었습니다.
긴장감과 분위기는 그대로, 감정선은 더 치밀하게
시즌 1의 주인공 레스터 나이가드는 보험 영업사원입니다. 영화에서처럼 겁 많은 무능력자죠. 하지만 그가 범죄에 휘말려들게 되는 설정이 좀 더 상세해졌습니다. 고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혔던 깡패 샘 헤스를 만나 샘의 자식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고, 아내는 잘나가는 동생과 자신을 비교하며 깔봅니다. 늘 억눌린 채 살던 레스터가 한 이상한 사내를 만나게 되면서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샘의 주먹에 놀라 혼자 유리창에 코를 박고 쓰러진 레스터. 병원에서 론 말보를 만납니다. 레스터가 오해였다는 식으로 에둘러 말하려 해 보지만, 순식간에 진실을 꿰뚫어 봅니다. 레스터도 엉겁결에 고등학교 때부터의 악연을 털어놓죠.
"내가 당신 입장이었다면.."
뒷말이 무엇일지 안 들어도 예상이 가지 않나요?
레스터는 홧김에 "그렇게 확실하다면 날 위해 녀석을 좀 죽여주시죠"라고 말하고, 이 이상한 남자는 너무나 진심인 것 같은 얼굴로 YES or NO 하나만 고르라고 하죠. 그렇게 파국이 시작됩니다.
론 말보는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르고, 타인을 곤경에 빠지게 하는 걸 즐기는 규범 외의 존재입니다. 그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슬쩍 나쁜 길로 밀어버리고, 그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게 합니다. 레스터도 그렇게 빠져든 사람 중 하나가 되고요. 마치 쉬운 일인 것처럼 범죄를 저지르는 론, 그리고 누구나 아는 소심쟁이 레스터의 변화는 '평범 속의 악'을 떠올리게 합니다.
유명 배우들의 호연
조용한 듯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연출과 함께 이 드라마의 맛을 살려주는 것은 주연들의 연기력입니다.
레스터 역을 맡은 마틴 프리먼은 몸집이 작고 귀여운 인상이라 소시민이나 주인공을 서포트해주는 선한 역을 많이 맡아왔죠. 국내에서는 영화 <호빗>의 빌보 배긴스, 영드 <셜록>의 왓슨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배우는 배우, <파고>에서는 회색 지대에서 암흑의 지대로 점차 옮겨가는 레스터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론 말보를 연기한 빌리 밥 손튼은 안젤리나 졸리의 전 남편입니다. 각종 영화로 오스카 남우주·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영화 감독으로서도 활약해 <슬링 블레이드>로 오스카 각본상을 받은 인물이죠. 코엔 형제와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사랑>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2014년 드라마 <파고>까지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파고>에서 눈빛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는 사나이, 론 말보에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표현해냈습니다.
이들의 사건을 뒤쫓아가는 유능한 경관 몰리 솔버슨 역할을 맡은 것은 앨리스 톨먼입니다. 앨리스 톨먼은 미드 <파고>로 골든글로브 수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몰리는 사건 수사가 여의치 않은 환경에서도 끈기를 잃지 않는 유능하고 열정적인 캐릭터인데요. 앨리스는 몰리의 매력을 인간미 있게 풀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겨울에 어울리는 영화와 드라마, <파고>.
드라마 <파고>의 시즌 1, 2, 3은 앤솔로지 형식으로 서로 큰 관련성이 없어 무엇부터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시즌 1에서 복선이 깔리기도 하고 시즌 2가 시즌1의 프리퀄 격이기 때문에 되도록 시즌 1부터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웨이브에서 영화 <파고>와 드라마 <파고>(시즌 1~3)를 모두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Credit Info
wavve 김소현
<파고>시즌1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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